한 마리 길고양이에서 시작된 독특한 유전자의 이야기
데본 렉스(Devon Rex)는 커다란 귀, 짧고 곱슬거리는 털, 독특한 체형으로 사랑받는 고양이 품종입니다. 그 생김새가 워낙 특별해서 ‘요정 고양이’ 또는 ‘외계인 고양이’라고 불리기도 하죠. 하지만 이 고양이는 인위적인 개량이 아닌, 한 마리의 돌연변이 고양이로부터 자연스럽게 탄생했습니다. 데본 렉스의 역사는 1960년대 초 영국 남서부의 작은 마을에서 시작되었으며, 그 우연한 발견이 오늘날 세계적인 품종으로 발전하게 된 배경이 되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데본 렉스의 기원과 품종 형성 과정을 차근히 살펴보겠습니다.
영국 데본셔에서의 우연한 탄생
1960년, 영국 남서부 데본셔(Devonshire) 지방의 버크햄 근처에서 한 여성, 베릴 콕스(Beryl Cox)는 길고양이 한 무리를 돌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그녀는 다른 새끼들과 전혀 다른 외모를 가진 고양이를 발견했습니다. 이 수컷 새끼는 짧고 곱슬거리는 털, 커다란 귀, 날렵한 얼굴을 가지고 있었죠. 베릴은 그 고양이에게 ‘커를리(Curlie)’라는 이름을 붙였고, 바로 이 고양이가 오늘날 모든 데본 렉스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이름 ‘데본 렉스’의 유래
‘데본 렉스’라는 이름은 태어난 지역인 데본셔(Devonshire)와 곱슬털을 뜻하는 ‘렉스(Rex)’가 합쳐진 형태입니다. 렉스라는 단어는 원래 곱슬 털을 가진 토끼 품종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후 곱슬거리는 털을 지닌 고양이 품종에도 붙여지게 되었습니다. 즉, ‘데본셔 지역에서 발견된 곱슬 털 고양이’라는 뜻이 바로 데본 렉스의 이름에 담긴 의미입니다.
구분 지역 발견 시기 대표 개체 이름
데본 렉스 | 영국 데본셔 | 1960년 | 커를리(Curlie) |
코니시 렉스 | 영국 콘월 | 1950년대 | 킬링크(Kallibunker) |
코니시 렉스와의 차이
당시 영국에는 이미 곱슬털 고양이로 유명한 ‘코니시 렉스(Cornish Rex)’라는 품종이 존재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커를리가 코니시 렉스의 또 다른 개체라고 생각되었죠. 하지만 두 품종을 교배했을 때, 새끼들이 곱슬 털을 물려받지 않았습니다. 이 실험 결과를 통해 두 품종의 곱슬 털 유전자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코니시 렉스는 겉털이 자라지 않아 곱슬거림이 생기는 반면, 데본 렉스는 모낭의 구조 자체가 비정상적으로 발달해 독특한 털 질감을 보이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로써 데본 렉스는 완전히 독립된 품종으로 분류되었습니다.
품종으로 인정받기까지의 과정
1960년대 후반, 베릴 콕스는 커를리의 후손을 기반으로 품종 육성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초기에는 혈통이 한정되어 유전적 다양성이 부족했기 때문에 교배가 어려웠습니다. 이후 다른 영국 브리더들이 함께 참여하면서 품종의 안정화가 진행되었고, 1968년 영국 고양이협회(GCCF)에서 데본 렉스가 공식적으로 등록되었습니다. 그 후 1970년대 초반에는 미국 브리더들에게도 소개되었으며, 1979년에는 미국의 주요 고양이 단체인 CFA(고양이애호가협회)와 TICA(국제고양이협회)에서도 공식 품종으로 인정받았습니다.
독특한 외모와 유전적 특징
데본 렉스의 외모는 일반 고양이와 크게 다릅니다. 짧고 탄력 있는 곱슬 털은 실크처럼 부드럽고, 귀는 얼굴보다 커서 마치 요정을 떠올리게 합니다. 털은 속털과 겉털이 불분명하게 섞여 있어 몸의 윤곽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며, 피부를 따라 부드럽게 감기는 형태를 띱니다. 이러한 털 구조는 자연 돌연변이로 발생한 것으로, 인위적인 교배가 아니라 자연이 만들어낸 독특한 결과입니다.
미국으로의 전파와 대중적 인기
미국에 소개된 이후, 데본 렉스는 빠르게 인기를 얻었습니다.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특이한 외모와 더불어 성격이 매우 활발하고 사람을 잘 따르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미국 브리더들은 데본 렉스의 유전적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신중한 교배를 이어갔고, 동시에 샴이나 버마고양이 등과의 교배를 통해 체형과 털 상태를 개선했습니다. 이런 노력 끝에 현재의 세련된 외형을 갖추게 되었죠.
유전적 안정화와 보존 노력
초기 데본 렉스는 좁은 유전자 풀로 인해 근친 교배의 위험이 컸습니다. 따라서 1980년대 이후에는 품종의 건강성을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개체 간 교배 프로그램이 진행되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유전적 안정성이 확립되었고, 현재는 건강하고 생식 능력이 안정된 품종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또한 세계 각국의 브리더들이 협력하여 혈통 관리 시스템을 유지하며 품종 보존에 힘쓰고 있습니다.
자연의 우연이 만든 품종
데본 렉스의 역사는 인간이 계획한 품종 개량이 아닌, 자연이 스스로 만들어낸 결과라는 점에서 특별합니다. 한 마리 길고양이의 돌연변이에서 시작된 이 품종은, 독특한 유전자와 인간의 관심이 만나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고양이로 발전했습니다. 오늘날 데본 렉스는 그 곱슬거리는 털과 장난기 많은 성격으로 많은 반려인들에게 특별한 존재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