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유전자의 차이가 만들어낸 장모와 단모, 그리고 두 고양이의 평행한 역사
소말리(Somali)와 아비시니안(Abyssinian)은 마치 형제 같은 관계의 고양이입니다. 외형적으로도 닮았고, 성격이나 행동 패턴 역시 비슷해 많은 사람들이 처음에는 두 품종을 구분하기 어려워합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소말리는 사실 아비시니안에서 비롯된 품종으로, ‘장모(긴 털)를 가진 아비시니안’이 바로 그 시작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둘의 관계는 단순한 혈연을 넘어, 품종 개발의 역사와 인간의 선택이 만들어낸 특별한 인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그들의 운명적인 연결고리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겠습니다.
아비시니안의 기원, 소말리 이야기의 시작점
아비시니안은 19세기 후반 영국에서 확립된 오래된 품종으로, 이름은 ‘Abyssinia(현재의 에티오피아)’에서 유래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지역의 고양이가 아니라, 인도양 연안과 이집트에서 유래한 고양이들이 교배되며 만들어졌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이 품종은 야생 고양이를 연상시키는 짙은 털색과 활달한 성격으로 사랑받았는데, 바로 이 아비시니안의 번식 과정에서 소말리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우연처럼 찾아온 ‘장모 유전자’의 등장
20세기 초, 아비시니안을 교배하던 브리더들 사이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완벽한 단모종만 태어나야 할 교배에서 털이 길고 부드러운 새끼들이 간헐적으로 태어난 것이죠. 당시에는 장모 유전자가 불순한 계통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겨져 이런 고양이들은 번식에서 제외되거나 판매용으로 분류되었습니다.
하지만 일부 브리더들은 그 고양이들이 가진 특별한 털빛과 온화한 성격에 매료되어 따로 사육을 이어갔습니다. 그 결정이 결국 새로운 품종, 소말리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유전학적으로 본 두 품종의 관계
아비시니안과 소말리의 차이는 단 하나, 털 길이에 있습니다. 이는 ‘장모 유전자(L-locus)’의 발현 여부에 따라 결정됩니다.
구분 아비시니안 소말리
| 털 길이 | 단모 | 장모 |
| 유전자 조합 | LL | Ll 또는 ll |
| 털 질감 | 짧고 밀도 높음 | 부드럽고 풍성함 |
| 꼬리 형태 | 가늘고 단정함 | 풍성하고 길게 퍼짐 |
즉, 소말리는 아비시니안의 장모형 표현체로 볼 수 있습니다. 같은 유전적 기반을 공유하되, 단 하나의 열성 유전자가 다른 결과를 만들어낸 셈입니다.
숨겨진 유전이 품종으로 인정받기까지
1960년대 들어 일부 브리더들이 장모 아비시니안을 의도적으로 교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중 미국의 브리더 이브 맥러든(Eve Mervyn McCloud)과 조지아의 린리언 윌리스(Lynn Lee Willis)가 소말리 품종 확립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들은 장모 유전이 단순한 ‘돌연변이’가 아니라, 품종의 다양성을 풍부하게 만드는 요소라 판단했습니다. 그 결과, 아비시니안의 혈통을 유지하면서도 장모형의 고양이를 체계적으로 번식시켜 ‘소말리(Somali)’라는 독립 품종을 탄생시켰습니다. 이름은 아비시니아(에티오피아)와 이웃한 국가 ‘소말리아(Somalia)’에서 따온 것으로, 두 품종의 혈연적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서로 닮았지만 다른 매력
외모상으로는 털 길이 외에도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아비시니안은 단단하고 날렵한 근육형 체형에 짧은 털이 밀집되어 있어 야생적인 인상을 줍니다. 반면 소말리는 부드럽고 윤기 나는 장모 덕분에 보다 우아하고 온화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또한 아비시니안이 짧은 꼬리털로 민첩함을 강조한다면, 소말리는 풍성한 꼬리로 ‘폭스캣’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마치 여우가 숲을 뛰노는 듯한 이미지가 바로 이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죠.
성격의 유사성과 미묘한 차이
두 품종은 놀라울 만큼 비슷한 성격을 보입니다. 지능이 높고, 호기심이 많으며, 사람과 교감하는 것을 즐깁니다. 하지만 소말리는 아비시니안보다 조금 더 차분하고 온화한 기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긴 털이 주는 시각적 안정감 때문이기도 하지만, 번식 과정에서 선별된 성격적 특징이기도 합니다.
아비시니안이 활발하고 탐험을 좋아하는 ‘모험가형’이라면, 소말리는 보호자 곁에 머무르며 애정을 표현하는 ‘교감형’에 가깝습니다.
품종으로서의 인정과 갈등
1970년대 초, 소말리는 미국과 캐나다의 브리더 협회를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독립 품종으로 인정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일부 아비시니안 브리더들은 여전히 소말리를 ‘불순한 아비시니안’으로 간주하며 반대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말리의 인기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1979년 국제 고양이협회(TICA)와 1991년 CFA(미국고양이애호가협회)가 공식 품종으로 등록했습니다. 이로써 두 고양이는 명실상부한 ‘유전적 형제’로 인정받게 되었죠.
같은 뿌리, 다른 매력을 지닌 존재
소말리와 아비시니안의 관계는 단순히 유전학적인 연결 그 이상입니다. 한쪽은 단모, 다른 쪽은 장모이지만, 둘 다 공통적으로 지능, 사회성, 그리고 호기심이라는 핵심 성향을 공유합니다. 서로를 비추는 거울 같은 존재이자, 각자의 방식으로 진화한 개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말리는 아비시니안의 우아함에 따뜻함을 더한 품종이고, 아비시니안은 소말리의 부드러움 속에 숨어 있는 야생성을 간직한 품종입니다. 이처럼 서로 닮았지만 다른 매력은 두 품종의 관계를 더욱 특별하게 만듭니다.
운명적 관계가 전하는 메시지
소말리와 아비시니안은 인간의 선택과 자연의 유전이 만나 만들어낸 품종입니다. 만약 브리더들이 과거 그 장모 새끼들을 버리지 않았다면, 소말리라는 이름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결국 두 품종의 역사는 ‘다름을 인정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과정’이었습니다.
이들의 관계는 단지 유전학의 결과가 아니라, 다양성과 아름다움이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